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3월은 그야말로 격변의 달이다.
실제로 우리 집 아기는 19개월에 어린이집을 처음 들어갔다가
10개월 고생 끝에 중간퇴소를 하고
1개월 가정보육 후 새로운 어린이집에 중간입소를 했다.
이 글은, 작년 초 어린이집을 선택하고 보내면서 겪었던 중간퇴소 시그널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이집 적응에 문제가 있는데
처음이라 잘 모르겠고, 자꾸 엄마가 불안해하지 않아야 된다고만 하고 그게 어떤 긴가민가의 상태라면
나는 엄마의 판단을 응원한다.
그 어린이집을 선택했던 이유
1. 규모가 작아 내향적인 아기 기질에 잘 맞을 것 같았다.
2. 자연 활동과 바깥 놀이가 많아 육아 방향에 적합해 보였다.
3. 원장이 상담 이후부터 전화로 아기 안부와 육아 상담을 꾸준히 해주었다.
4. 일찍 적응시키면 내 인생 계획도 더 희망차게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간퇴소 한 이유
1. 규모가 작은 데다 또래 친구들과 발달 차이가 너무 나는 반 구성.
2. 활동이 너무 단조롭고 적어서 개월수가 늘어갈수록 맞지 않음.
3. 원장이 처음 상담할 때와 입소 후 대응이 완전 달라짐. 10개월 동안 만 0세, 만 1세 반 전체 선생님들이 3번이나 바뀌었는데 공지 한번, 양해 한 번이 없고, 책임 회피가 심했다.
4. 10개월 동안 정도의 차이만 있지 거의 매일 등원거부로 인해 마음고생을 했다.
5. 여름에 에어컨 안 돌리고, 돌리면 28도로 대낮에 1시간 돌렸다. 오죽하면 지나가는 단지 내 어르신들이 여기 어린이집 실외기 돌아가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등하원 때 뜨거운 어린이집 현관, 선생님들도 더위에 찌들어 계심. 원장에게 말하니 "안 더운데요?"
6. 여기는 키즈노트에 점심만 사진을 올려줬는데 알고보니 오후 간식이 식단표랑 다르거나 형편없었다. 오후 간식 사진도 같이 올려달라고 하니 무슨 키즈노트 시스템이 그렇게 안된다는 둥, 운영위원회가 어쩌구, 간식을 미리 만들어놓을 수가 없다는 둥 진짜 횡설수설..
7. 적응기를 비롯한 모든 보육 시스템이 주먹구구식이었다. 뭔가 의문을 제기하거나 궁금해서 물어보면 핑계가 늘 운영위원해 탓이었는데, 운영위원회 회의 사항 공유가 전혀 없다. 현재 옮긴 어린이집을 겪어보니 회의내용 다 공유해주심. 상담 요청에도 '원래 그런시기, 아이 기질' 아이 탓, '아이를 믿으세요' 유약한 부모탓이었다.
8. 원장이 선생님들을 학부모와 최대한 접촉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키즈노트 내용 검열뿐만 아니라 등하원 때 대화 길게 하지 말라고 단속했다. 말미에는 아예 등하원은 원장 혼자 나와서 받았다. 담임쌤하고 대화를 전혀 할 수 없었다. 키즈 노트에도 학기초엔 선생님 스타일대로 아이 얘기, 발달이나 행동 관찰 내용이 많았는데 점점 아이 얘기 다 빠지고 활동 내용 3줄이 끝이었다.
더 많은 퇴소 시그널들이 있었는데 왜 알아채지 못하고 참았을까..
결국 담임선생님 또 바뀐다고 해서 이건 아니다 싶어 같이 퇴소했다.
ep. 'ㅅ' 어린이집 영업 방식
보통 어린이집 입소는 새 학기인 3월에 시작한다. 나도 전년도 11월쯤 두 군데 상담을 받고 동네 가정어린이집 중 가장 평이 좋았던 'ㅇ' 어린이집에 3월 입소로 확정해 놓았다. 그렇게 3월까지 기다리면 됐는데...
친정집 1층에 제3의 'ㅅ' 가정어린이집이 있었다. 작은 규모(24평)에 아기들도 많지 않아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미리 상담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오며 가며 그곳의 원장님을 몇 번 마주쳤고, 사람 좋게 한번 놀러 오라며 호의적으로 대해주셨다. 겨울 동안 친정에 자주 놀러 갔고 그때마다 자리가 있으니 3월까지 기다리지 말고 아기를 미리 보내라는 얘기에 많이 흔들렸다. 어쩌면 우리 아기 성향에는 더 소규모에 잔잔한 자연활동을 주로 하는 곳이 맞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미리 입소해서 적응을 빨리 하면 나도 내 시간을 갖고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레기도 했다. 상담을 한 번 받은 후, 원장님으로부터 거의 매일 전화가 왔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감기에 걸렸을 때라 정신없고 모르는 것 투성이었는데, 원장님은 병원은 어디로 다니는지, 컨디션은 괜찮은 지, 어떻게 케어해야 좋은 지 이런저런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주셨다. 아, 어린이집이라는 게 이런 육아 길잡이 역할도 해주시는구나, 여기라면 공동 양육자 같은 느낌으로 기관 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월을 앞둔 2월, 원래 가기로 했던 어린이집에 양해를 구하고 친정집 1층 ㅅ어린이집에 입소를 했다.
입소 후, 원장선생님은 전화 한 번 주지 않았다. 아기가 적응을 못해 매일 울며 등원했는데도...
지금 생각하면 이 원장의 영업 방식이었다. 상담만 받아도 그 번호로 계속 안부 전화를 한다. 나뿐만 아니라 그렇게 입소한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3월 입소대기를 걸어두었어도 바로 연락 와서 지금 자리 있으니까 보내라고 사람 좋게 말하는 거다.
그런데 입소하면 원장이랑 상담 한 번하기 힘들다. 원장의 말을 듣다 보면 다 당연한 건데 의문을 제기하는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다.
정원에 한참 못 미치게 다 채워지지 않는 곳은 이유가 있는데 내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상담 때 반 구성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는데 정확히 대답을 못했던 게, 아기들이 퇴소 입소가 잦으니 제대로 된 반 구성이 될 리가 없었고 선생님들 또한 안정적인 근무 환경이 아니었던 거다. 0세, 1세 반만 있고 그 마저도 1세반 정원도 못 채울 정도였다. 새 학기엔 만 2세 반도 없어졌는데 상담할 땐 이런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반 구성에 고민을 하고 있다, 생일 빠른 친구들과 느린 친구들을 구분해서 이렇게 저렇게 구성예정이라는 둥 하도 말을 바꾸고 얼버무려서 제대로 된 답변을 파악할 수 없다. 이 원장의 화법이 그렇다. 입소 전엔 잘 알아챌 수 없다.
그냥 토 달지 않고 신경 많이 안 쓰고 싶은 부모에게 적합한 곳인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0세 영아정도.
난 그게 아니었는데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이게 맞나? 이게 맞나? 하며 10개월을 보냈다. 후회한다.
ep. 어린이집 입소 후 적응기
처음 적응기 때는 아기도 즐겁게 등원했다. 엄마가 옆에 있으니 새로운 키즈카페에 온 것으로 알았을 테다. 이틀정도 지났을까 거실에서 잘 놀고 있는 아기를 두고 원장을 비롯한 선생님들이 나에게 아기 몰래 나가라고 했다. 어리둥절했지만 시키는 대로 나갔고, 아마 그때 아기가 많이 충격도 받고 울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아기는 어린이집 문 앞에서부터 울기 시작했다. 그런 아기를 억지로 떼어서 데리고 들어가는 선생님을 보며 뭔가 이건 아닌 것 같아 여러 육아서적과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어린이집 처음 입소 후 적응기에 제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다. 몰래 나가기. 20개월이 되어가는 아기는 이미 상황 파악을 다 할 줄 아는데, 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런 적응 방법을 썼을까, 원망스러웠다.
아침 등원 때마다 울어재끼니 어린이집에서는 아기가 적응이 느리다며 낮잠 전 하원을 하라고 했다. 나도 마음이 불편해 차라리 이른 하원이 더 낫다고 느꼈다. 이것도 나중에 보니 일단 입소 먼저 시켜놓고 2월이라 선생님 손이 부족하니, 낮잠 전에 하원해서 손 덜게 하는 수법이었다. 퇴소 막달에 새로 들어온 아기가 있었는데 통합반에 입소시키더니 이 방법을 똑같이 쓰더라. 그냥 어떻게든 입소 먼저 시켜서 부모 발목 잡아 두는 거다. 아기의 적응이 걸려있으니 퇴소나 전원이 쉽지가 않다는 걸 이용한다. 실제로 나도 입소 초기에 아기가 매일 울고 적응을 못하니 퇴소하려 할 때 지금 퇴소하면 아기가 기관에 영원히 적응 못할 것처럼 다른데 가도 똑같다는 얘기에 그럼 힘들어도 천천히 적응시키는 게 맞다고 생각했었다.
매일 아침 닫힌 문 앞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다가 갔다. 이런 걱정을 내비치면, 어린이집에서는 아기 기질이 그런 거고 모든 애들이 처음엔 다 운다며, 어느 날은 또 재접근기 뭐 그런 시기라 그렇다는 짧은 대화를 했고 발을 동동 구르는 나를 의연하지 못한 엄마로 보는 듯했다.
그렇게 2월, 3월... 등원 거부는 나아질 기미도 안 보였다. 아기가 이상해졌다. 밤에 깨서 소리를 지른다던가 갑자기 울기도 하고 어느 날은 자다 깨서 자기 머리를 때렸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이집이랑 맞지 않은 것 같아 가정 보육 할 요량으로 마지막 상담을 요청했다. 적응기 때 몰래 나갔던 일이 아기가 기관을 긍정적으로 경험하는 데에 방해가 된 것 같고, 다시 처음부터 적응기를 거쳤으면 한다. 그게 안 된다면 퇴소를 해야 할 것 같다. 키즈노트에 길게 남겼다. 그다음 주, 담임선생님이 병가를 냈다. 병가 이유를 물어도 대답이 시원찮았다. 내 상담 내용 때문일까, 내가 진상 학부모가 된 걸까 마음이 답답했다. 추후에 알게 된 거지만, 원장은 그저 회피가 심했고 담임선생님은 내 상담요청과 무관한 병가였다. 그렇게 적응기에 대한 찝찝함은 뭉개졌다.
ep. 10개월 동안 선생님이 몇 번 바뀌는 건지
담임선생님의 병가중에 나와 아기는 친정식구들과 긴 여행을 떠났다. 모두가 너무 지쳐있었다.
다시 돌아온 4월, 등원을 하니 처음 보는 선생님이 인사를 하셨다. 아, 담임쌤 아직 병가인가요? 대체선생님이실까요? 아니었다. 담임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걸 당일에 등원하고 알려줬다. 어이가 없었지만 아기는 다행히 새로 오신 담임선생님과 잘 맞는지 그전보다 안정 돼 보였다. 전화위복인가 보다 생각했다.
등원거부 강도도 낮아지고 키즈노트 사진 속 표정도 밝아졌다. 담임선생님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9월 어느 날, 담임선생님을 뺀 나머지 모든 선생님들이 퇴사하신다고 했다. 원장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원장은 친한 학부모에게 선생님들이 이상한 탓이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남아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이기적인 것 같았다. 이미 우리 아기는 학기 초에 선생님들이 바뀌면서 어수선한 어린이집에 거부가 있었기 때문에, 또 다른 선생님들과의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가 걱정이 되었고 담임선생님도 휩쓸려 그만 두시면 어쩌나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담임쌤도 원장과 갈등 끝에 10월 말 급 퇴사 결정이 나고 11월께 나가게 되었다.
원장을 믿고 계속 보내기엔 10개월 동안 겨우 2개, 3개 반 관리도 안 돼서 생기고 사라지며 선생님들이 몇 번이나 바뀌는 걸 목격했고,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아기들이 받는 피해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담임선생님 퇴사와 함께 우리 아기도 나가겠다고 말했고 그 과정에서도 소위 짜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정말 질려버렸다. 이를 테면 선생님들과 부모님 사이의 이간질, 대화 차단 등. 특별활동이 1개밖에 없어서 다양한 활동에 대해 의견개진을 해도 다른 부모님들의 동의 탓을 하며 어떤 이에겐 유난과 간섭의 주동자처럼 되어있다거나의 일화들이 있었다.
제일 질리는 건, 그 어린이집에 친정집 1층이라 친정엄마가 원장과 곧잘 마주치곤 하는데 인사하면 안 받아준다고 한다. 두 번이나 그래서 엄마가 매우 속상해하시길래 인성이 원래 그런가 보다고 앞으론 엄마도 인사하지 말라고 해버렸다. 진짜 제일 짜치는 부분이다.
물론 지금도 그곳에 아기를 믿고 맡기는 분들도 있고, 잘 맞고 즐겁게 다니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뭔가 아닌 것 같은데 긴가민가 하다면 기우는 아니니 자신과 아이를 보고 잘 선택하시길 바라며.
ps. 새로운 어린이집을 가고 나서 나는 우리 아기가 무조건 기관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다닌 지 일주일 쯤 지났을까, 하원하면서 "엄마 오늘 나 너무 재밌었어."라고 말하며 뛰어나오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어린이집 옮기고 4개월 동안 한 번도 등원거부가 없었다. 하.......